이와타니 나오지의 세계

프로판가스 용기를 놓은 책상을 둘러싼, 핫피 차림의 어른과 아이들 인형

순환 사상돌고 도는 생명(에너지)

이와타니산업 주식회사 창업자.
생애가 한 세기에 이르는 이와타니 나오지(岩谷直治)의 인생은, 그 행적과 업적이 맞물려 그야말로 시대의 산증인이었다. 생애를 에너지 사업에 바친 나오지의 영혼에 다가간다.

2007년 완성 / 이와타니산업 주식회사 소장. 이와타니산업 '이와타니 나오지 기념 집무실'의 의뢰로 제작했습니다.

이와타니 나오지 제작 노트에서

Scene 1

〈프로판가스의 전도사(プロパンガスの伝道師)〉

1953년(쇼와 28년) · 나오지 만 50세

어머니의 노고를 헤아려, 여성을 부뚜막의 연기와 그을음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프로판을 가정용 연료로 보급했다.
기노사키 온천의 신사 경내에서 열린 시연 모습.
허름한 책상 위에, 주물 풍로에 호스로 연결한 프로판 용기. 눈에 보이지 않고 연기도 나지 않는 열로 끓어오르는 대형 플라스크의 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흥미로워하는 풍부한 표정.
처음 보는 것을 만난 인간의 '놀라움과 환희'를 표현(해후).

  • 프로판가스 용기를 놓은 책상을 둘러싼, 핫피 차림의 어른과 아이들 인형
  • 호스로 연결한 프로판가스 용기와, 플라스크를 들여다보는 남자아이 인형
  • 놀란 얼굴, 기쁜 얼굴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 인형

환경 지향 경영의 상징으로

Scene 2

〈에너지를 좇아서(エネルギーを追い求めて)〉

2005년(헤이세이 17년)

나오지 승천. 향년 103세. 푸른 지구를 배경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마음에 새긴 소년 나오지와 만년의 나오지가 하늘을 가리킨다.

  • 푸른 지구 그림을 등지고 주먹을 치켜든 소년 나오지와, 하늘을 가리키는 만년의 나오지 인형
  • 지구를 등지고 하늘을 가리키며 웃는 만년의 이와타니 나오지 인형

이와타니 나오지이와타니산업 창업자 / 1903년(메이지 36년)~2005년(헤이세이 17년)
시마네현 오다시 출생

1903년(메이지 36년), 이해 일본에서는 국내 최초의 영업 버스가 교토 시내를 달렸고, 멀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같은 해 시마네현 이와미 지방에서 태어난 이와타니 나오지는 열두 살이 되자 오다의 농업학교에서 공부하며, 다윈의 '진화론'으로부터 적자생존, 우승열패의 냉엄한 현실을 배웠고, 훗날의 기업 이념인 '세상에 필요한 것이야말로 번성한다'라는 원칙을 머릿속에 새겼다. 이것이 그의 평생에 걸친 원리 사상이 된다.

그는 한 세기를 살았다.
그 존재는 '역사'의 목격자이자 증언자이기도 했다.
열다섯 살, 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도야마에서 일어난 쌀 소동에서 비롯된 방화 사건을 고베에서 마주쳤고, 스무 살 때는 요코하마에서 간토 대지진(사망자 99,000명, 행방불명 43,500명)을 겪었다.
스물일곱 살에 창업한 나오지의, 산소 가스 판매를 주목적으로 한 기업의 꿈이 부풀어 가는 한편, 시대는 만주사변, 이어지는 상하이 사변으로, 군국주의가 일본을 집어삼켜 간다.
그러던 쇼와 9년(1934년), 완전히 무너지거나 떠내려간 가옥이 4만 호에 이른 무로토 태풍이 덮쳤다. 나오지도 화를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진주만 공격과 함께 시작된 태평양 전쟁.
중국 상하이, 톈진, 오사카를 넘나드는 장사는 목숨을 건 것이었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오사카에서 종전을 맞았다.
13만 호를 태워 버린 오사카 대공습으로 두 번이나 집을 잃으면서도 재기를 이룬 나오지는 1953년(쇼와 28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전국 규모로 프로판가스를 가정용 연료로 판매하기 시작한다.
사심도 욕심도 없는 이타의 정신이 그 원점에 있었다.

그가 꿈꾸었던 가스 에너지 사업의 인류 사회에 대한 공헌은, 도쿄 올림픽 성화대의 성화로 타올랐고, 1986년·1994년에 발사된 일본 최초의 국산 H1(1호기), H2(1호기) 로켓의 발사를 지켜봄으로써 이루어졌다. 성화에는 그가 이름 붙인 마루이 프로판이 쓰였고, H1, H2 로켓의 연료인 액화수소는 이와타니 그룹이 공급한 것이었다.
그 역사적 순간에 함께한 나오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내 자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프로판가스를 가정용 연료로 보급하는 데 힘쓴 것도, 여성을 부뚜막의 그을음에서 해방시키고 싶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였다. 수소 가스의 실용화를 향한 노력도 이와타니의 슬로건 '살기 좋은 지구가 이와타니의 소원입니다.' 그대로였다. 수소 에너지가 꿈의 무공해 에너지라는 데 그는 누구보다 일찍 주목하고 있었다. 사업과 자기 자신이 직결되어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에너지와 환경이라는 큰 스케일의 시야에 서서 한 세기를 살아 내고,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너머의 미래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를 따른 것은 자신의 그림자뿐이었을까.
지금, 시대는 겨우 그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2005년 7월, 이와타니 나오지는 조용히 그 '생'을 마쳤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꿈은 인류 보편의 순환 사상이 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이야기해 준다.

'시대와 인간'

이와타니 나오지 옹을 생각할 때, 하나의 보편적인 주제에 이르게 됩니다. '시대와 인간(개인)'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간이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을 그 시대와 함께, 어떻게 고난을 견디며 미래를 개척해 나갔는가.
행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 일에 대해 어떠한 신념과 이념을 가질 수 있었는가.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인간성을 오래도록 전해 갈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타니 나오지 옹을 생각할 때, '사람은 모두 신의 아이이며, 영원의 아이이다'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본래 흙으로 돌아갈 숙명을 지고 태어나는 인간에게, 신란은 해후의 행복을 설했습니다.
근대 정신의학의 거두인 프로이트, 아들러, 융은 '무의식의 존재'에 빛을 비추며, 무의식이야말로 사람의 인생을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의식은 어떻게 발달해 가는가 하면, 유전자도 물론이거니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인간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정토진종의 가르침이 뿌리내린 이와미 지방에서 자란 나오지 옹은, 무의식중에 신란의 가르침을 생애에 걸쳐 실천하며, '고통의 사바'라 불리는 현세에서 '해후'의 행복을 이해하고 맛본, 신불의 가호도 두터운 사람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타니 나오지 옹의 존재를 통해, 우리 또한 자신이 서 있는 지평을 실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007년 5월 · 글: 이시이 미치코(石井美千子)

먼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품 〈부처의 미소〉의, 웃고 있는 할머니와 등 뒤에서 끌어안은 손주 인형

전시회 개최, 시설 전시 리스, 작품 라이선스, 사진집과 엽서 취급. 어떤 상담이든 하나의 양식으로 받습니다.

TOP